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40길 46
현재의 국군중앙 주교좌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와현(瓦峴), 와서현(瓦署峴) 또는 왜고개로 불리던 곳으로 기와와 벽돌을 공급하던 와서(瓦署)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왜고개가 한국천주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시신이 이곳에 묻히면서부터다. 기록상 가장 먼저 순교자가 묻힌 것은 병오박해 때 순교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시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셨고, 그 시신은 서야고보 등에 의해 왜고개로 옮겨졌다가 박해가 진정된 뒤에 미리내로 이장되었다.
또한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성 베르뇌 주교,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 성 볼리에 신부, 성 도리 신부, 순교자 프티니콜라 신부와 순교자 푸르티에 신부, 성 우세영 알렉시오 등 일곱분의 순교자가 33년간 묻힌 곳이고,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하신 성 남종삼 요한, 성 최형 베드로 등 두분의 성인이 43년 동안 매장되었던 유서 깊은 교회의 사적지다.
이들의 유해는 1899년 10월 30일에 뮈텔 주교에 의해 왜고개에 묻힌 지 33년 만에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안장되었고, 1900년 9월 4일에는 명동성당으로, 시복을 앞둔 1968년 5월에는베르뇌 주교, 볼리외 신부, 도리 신부, 우세영 알렉시오 등 네 분의 유해는 절두산 성당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안치되어 있다.
한편 박순집 베드로는 1866년에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한 성 남종삼 요한, 성 최형 베드로의 시신을 찾아 이곳 왜고개에 합장하였다. 이들의 시신은 43년만인 1909년 5월 28일에 뮈텔 주교에 의해 발굴되어 명동성당에 안치되었다가, 시복을 앞둔 1968년 5월에 절두산 성당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안치되어 있다.
그러나 성 부르트니에르 신부의 유해는 가족들의 요청으로 1911년 8월에 한국을 떠나 프랑스 다종으로 이장되었다가 현재는 유해의 일부가 절두산 성당에 모셔져 있다. 시복이 되지 않은 프티니콜라 신부와 푸르티에 신부의 유해는 아직도 명동성당 지하에 모셔져 있다.
왜고개에는 모두 열분의 순교자가 묻혔다. 그분들 중 여덟분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1981년 11월 7일 그분들이 묻힌 곳에 육군중앙성당을 지었으며, 1989년 10월 23일에는 군종교구가 설립되었다.
1990년 2월 13일에는 초대 군종교구장 정명조(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서품식과 함께 국군중앙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되었다.
1992년 12월 16일에는 이곳에 군종교구청이 건립되었다.
1999년 12월 15일에 제2대 군종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가 착좌, 2010년 9월 15일에는 제3대 군종교구장 유수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가 착좌하여 군 사목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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