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아/성지

나가사키 성지 순례 09 - 우라카미 주교좌 성당(浦上天主堂)

Paul kim 2007 2013. 4. 26. 22:42

 그리스도교 탄압이라는 금제가 해제되어 자유를 찾은 우라카미 신도들이

가장 먼저 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교회 건립 계획이었지만 자금난 때문에 계획을 세운지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1895년에야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우라카미 성당이에요.

 

 그리고 1914년, 동양 제일의 벽돌구조 로마네스크 양식 대성당으로서 헌당식이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정면의 쌍탑에는 프랑스제 안젤라스 종이 설치되었지만, 1945년의 원폭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안젤라스 종도 하나는 폭풍으로 종루 채 날아가 버렸다네요.

현재의 건물은 1959년에 재건된 것으로,1980년 벽동 타일로 개수되어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답니다.

주위에는 피폭의 유구인 석상 등이 놓여져 있구요,

 

250년 동안이나 신앙을 지켜오고 키리스탄의 부활도 우라카마 신도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의하여 실현된 것이었지 때문에 특별한 성당으로서  

1962년 오오우라 천주당을 대신하여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됩니다.  

 

지금도 원폭의 폭풍을 겨뎌낸 나머지 하나의 종이 하루에 세 번 시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614년 도쿠가와의 금교령으로 우라카미에도 박해가 미치기 시작하자 
마을 전체가 신자였던 우라카미는 4곳에 비밀교회를 만들어 신앙의 맥을 잇습니다. 
1865년 오우라성당에서 프티장 신부와 만남 이후 마을 신자 전체가 불교와의 단절을 선언하자  
메이지(明治)정권은 3,394명의 신자들을 21곳으로 6년간 분산 유배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라카미의 신자들은 이 유배를 ‘신앙여행’이라 불렀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것에 감사하며 
황폐해진 우라카미를 일구었으며, 필사의 노력으로 1925년 우라카미성당을 완성했습다. 
이 성당은 1945년 8월 9일 원폭으로 성모 승천 대축일을 준비하던 신자 24명과 사제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신자 1만2,000명 가운데 8,5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원폭으로 파괴됐던 성당은 이후 원형에 가깝게 재건됐습니다. 
7,000명의 신자가 있는 우라카미성당은 나가사키대교구 주교좌성당이자 
길고 긴 박해와 원폭으로 인한 폐허에서 신앙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 
나가사키교회의 상징과같은 곳입니다.

 

 

 

 

 

 

 

 

원폭 가운데에서 남아계신 성모님

방사능 때문에 근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이 성모님을 찾기 위해 원폭의 잔해를 뒤집어쓰며 다니셨던 신부님은

멀쩡하셨다고 해요. 일년 중 절반은 해외에 모습을 보이시기 위해

성당에 계시지 않는 경우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