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아/성지

신기공소

Paul kim 2007 2015. 5. 5. 22:47

신태인성당관활 신기공소 , 1958년 4월 20일 준공

 전북 정읍시 태인면 거산 신기1길 101

 

나무로 짠 틀 안에 언제라도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비어있는 감실이 있고 십자고상도 자리를 잡고 있다.

 

경당 이곳저곳에 색이 바랜 낡은 그림 수십 장을 짜 맞추어 걸어놓은 액자가 걸려있다.

한자가 간간히 섞인 설명을 오래된 필적으로 적어놓은 그림은 순교로 빛나는 한국교회사를 이야기처럼 그린 그림이었다.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구교우들은 이런 그림을 보면서 순교의 역사를 상기하고 신앙을 다졌을 것이다.

 

 

정읍 관내에 있는 대부분의 교우촌(敎友村)이 산간벽지나 궁벽한 시골마을에 박해를 피해 터를 잡은 곳인 만큼 신기('新基') 또는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터'라 부르고 있다. 

이를테면 과교동 신성마을이나 산내면 능교리 신기(新基)마을 등이 그것이다. 이곳은 평지에 교우촌이 형성되었다는 점이 여느 교우촌과 다르다.

공소(公所) 대부분이 자체 내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러나 이곳은 간략하나마 역대 공소(公所)회장들이 기록한 내용들을 교적철(敎籍綴)과 함께 현 공소회장(現 公所會長)인 윤준열(요한/63세)씨가 잘 보관하고 있다.

1934년 '동구내'에서 살던 주민 3가구(곽수영, 정상옥, 정장원)가 현 마을에 동시에 정착한 것이 시초가 되어 이때부터 새터라는 이름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뒤 동구내의 김중현 씨가 이주하면서 친척들과 교우들이 연락(1939)되어 다섯 가구가 늘었고 그 후 6.25전쟁 당시 궁벽한 산골마을이 인민군들에 의해 점령되자 정읍, 순창, 금산 등지에서 피난 차 모여든 것이 신자가구만 55가구가 되어 인구 300여명의 큰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마을주민의 한두 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톨릭 신자로 구성되어 있다.

공소(公所) 건물은 이 마을에 사는 박상규(朴相奎)씨가 대지 350평을 희사하고 본당 신부인 이대건(바오르) 신부의 일부 건립비 및 자재를 보조받아 1958년 4월 2일 완공(주보 김안드레아 신부. 김현배 주교 축성)하였다.1) 당시 지붕은 초가였으나 1961년에 기와지붕으로 개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