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재공소
전주교구 고산성당관할 되재공소
전북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되재 722
전주교구 고산성당 되재공소는 1895년 건립되었다.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완공된 성당이자 최초의 한옥성당이 었다.1866년 병인박해 때 이 지역은 약 50여개의 교우촌이 있었고 순교자도 약 110 여명이 나왔다.
순교자 중에는 천호성지에 묻힌 순교성인 4명인 이명서 베드로, 손선지 베드로,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한재권 요셉 등이 있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인해 신앙의 자유가 찾아왔다. 고산 성당의 전신인 되재 성당 의 역사는 1893년 4월 비에모(Vellemot, 禹一模, 1869~1950, 바오로) 신부가 차돌 박이(현 백석.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처를 정하고 전교를 시작한 때로부터 시작 된다.
비에모 신부는 다음해 초 거처를 되재(화산면 승치리)로 옮기고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동학 농민 운동으로 전라도 교회가 핍박을 당하자 일시 서울로 피신하 게 되었다.
1895년 되재성당이 완공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 뮈텔 주교에 의해 축복식이 거행 되었다. 1895년 프랑스 선교사였 던 비에모 신부의 기록에 의하면 한 때 400명의 교우가 모였던 큰 성당이었다.
1906년에는 신성학교를 세워 신자와 주민에게 한글과 한문을 가르쳤다.
1908년에는 신성학교를 태극계명학교로 개명하고 4년제로 개편하고 한글, 한문, 수학, 물리, 역사, 지리, 화학등 신학문을 가르쳤다. 이 학교는 1940년 경제난으로 폐교했다. 또한 1908년에 태극 계명 측량강습소를 설립 측량기술자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때 성당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어 1954년 되재공소 건물을 세웠다.
되재성당은 바실리카식 교회건축양식을 한식 목구조로 변형한 단층 건물로 새로운 문화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는 한옥성당이다.
기와를 얹은 팔작 지붕집이며 평면은 장방형으로 종축상에 제단과 출입구를 배치하 여 제단으로 향하는 공간의 깊이를 확보하였다.
성당의 본래 모습은 제8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의 일기와 사진자료 등을 통 해 확인할 수 있다.
1996년 피정의 집을 세웠고, 성당 뒤편에는 이곳에서 사목했던 조스 신부 (1851-1886)와 라푸르카트 신부(1860-1888의 묘소가 단장되었다. 되재성당은 2009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되재성당은 바실리카식 교회건축양식을 한식 목구조로 변형한 단층 건물로 새로운 문화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는 한옥성이었다.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집이었으며 평면은 장방형으로 종축상에 제단과 출입구를 배 치하여 제단으로 향하는 공간의 깊이를 확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