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아/성지

수원교구 사리틔공소

Paul kim 2007 2014. 8. 9. 19:04

수원교구 : 천리성당-사리틔 공소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서리 518-1

연락처 : 천리성당(031)333-4091

 

 

 

 

 

 

 

 

 

신부님 방

 

 

1977년6월11일 강복

 

 

 

남신도 출입구(왼쪽)와 여신도 출입구(오른쪽) 미사봉현을 드리는 곳이 나누어져 있다.

 

용인 지방에서 오래된 전설을 갖고 있는 교우촌 사리틔 공소가 있는 서리 하반은 박해 때

교우들이 피신해 살던 마을이다. 1791년 겨울 신해박해로 체포된 권일신(權日身, 1742~1792,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 배소로 출발하기 전에 관례적인 형장을 맞고 길을 떠나다가 도중에 객사하자 그의 자손들은 선영인 양평군 대석리(대감 마을)에 그를 안장하고 남은 가족들은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사해 살았다고 한다.

또한 초대 사리틔 공소 회장이며 공소 강당을 지은 조면 바오로는 1860년대의 호조판서 조일의 손자로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하여 부귀영화를 버리

고 진천 백곡에서 살았는데 몇 차례의 박해로 인하여 가산은 몰수되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어 길을 떠났다.

그럴 즈음 포졸들이 추적해 와 포박하려 하자 조 바오로는 워낙 힘이 센 장수였기에 포졸의 상투를 풀어 나뭇가지에 단단히 동여매어 놓고 이곳 사리

틔에 왔다는 일화가 전하여지기도 한다. 조면 바오로의 종증손이 서울대교구 조창희 베네딕토 신부이다.

 

사리틔에는 이전부터 구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전에 이곳에 성명 미상의 성직자가 거처했으므로 그 신부가 거처하던 집터를 신부터라 하였는데, 그 신부가 전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호환(虎患)을 당해 세상을 떠나, 신부를 마음 아파하던 교우들이 그 고개 이름을 붉은 고개라고 칭하게

되었다. 또한 사목을 하려고 넘나들던 고개는 신부 고개라고 이름 지어 지금까지도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구전을 전해 줄 수 있는 유물로 70여 년 전에 밭을 일굴 때 항아리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는 썩은 기도 책과 묵주 알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권일신(權日身)의 객사

1791년 겨울 신해박해로 체포된 권일신(1742~1792,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 앞서 몇 차례의 심문에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신하들이 사형시킬 것을 상소하였지만 정조가 그에게 팔순 노모에 대한 불효를 구실로 계속 설득한 결과 그가 마침내 배교로

해석되는 행동을 취하자 제주도로 유배시킬 것을명하였다. 제주도로 유배(위리안치)를 떠나다가 도중에 충청도

예산으로 변경되었지만, 배소로 출발하기 전에 관례적인 형장을 맞고 1792년 봄 길을 떠나다가 도중에 말죽거리에서

객사하였다고 한다.